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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발랜타인선물

초록정원1 2004. 10. 28. 12:47


          ♤ 발랜타인 선물

 

                  글ㆍ삽화: 조용훈

 


발랜타인 데이를 며칠 앞 둔 어느 날, 동네 제과점에는 여자 아이들이

 

남자 친구에게 선물할 초코렛을 사기 위해 모여 들었어요.

 

진열대에는 갖가지 모양의 초코렛이 이쁘게 포장되어 아이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자 아이들은 조잘대며 이것 저것 만져보며 초코렛을 골랐어요.

 

그런데 영희는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만지지 않았어요.

 

영희는 붕어빵 장사를 하는 홀엄마를 도우며 사는 착한 아이예요.

 

영희에게도 철이라는 남자 친구가 있는데, 철이는 부유한 집 아이지만

 

동네 어느 아이들보다도 영희를 아껴주었어요.

 

영희가 남자 친구가 있는데도 초코렛을 고르지 않는 것은 사기 싫어서가

 

아니라 살 수 없기 때문이에요. 왜냐면 초코렛을 살 돈이없기 때문이죠.

 

가끔 엄마에게 받는 용돈은 몸이 편찮은 엄마의 보약을 지어드리기 위해

 

돼지 저금통으로 모두 들어간답니다.

 

다소 비싸지만 마음에 드는 초코렛을 고른 여자 아이들은 제잘거리며

 

제과점을 나왔어요.

 

영희는 다른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빈 손으로

 

터벅 터벅, 붕어빵 장사하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어요.

 

"엄마, 저 용돈 조금만 주세요."

 

"지난 주에 줬잖아. 어디 쓸려고 해?"

 

"그건 묻지 마시고 그냥 조금만 주세요. 꼭 필요해서 그래요."

 

"자, 여기 천원. 오늘은 장사가 잘 안되서 많이 못 줘."

 

"고마워요 엄마."

 

영희는 빙그레 웃으며 천원을 받아들고 제과점으로 달려갔어요.

 

"아저씨, 이 초코렛 얼마에요?"

 

"그건 오천원."

 

"그럼 이건요?"

 

"그건 삼천원."

 

영희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다시 물었어요.

 

"천원짜리 초코렛은 없나요?"

 

"요즘은 선물용으로만 나오기 때문에 천원짜린 없어."

 

영희는 둘러보다가 사탕이 낱개로 쌓여있는 바구니를 보았어요.

 

"아저씨, 이 사탕은 얼마에요?"

 

"그건 하나 백원씩이야."

 

영희는 잠시 사탕을 바라보더니, 이쁜 색깔의 사탕 열 개를 골랐어요.

 

"아저씨, 이쁜 포장지 한 장만 주세요."

 

제과점을 나와 집으로 간 영희는 조그만 상자에 사탕을 담고

 

포장지로 이쁘게 감싸며 선물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선물과 함께 전해줄 메모지에 글을 썼어요.

 

< 철이야, 내가 선물을 준비했어. 그런데 초코렛이 아니라서

 

미안해. 오늘은 남자 친구에게 초코렛 주는 날이잖아.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나올려고 해. 그래도 친구 해 주는 거지? >

 

며칠 후, 드디어 발랜타인 데이가 찾아왔어요.

 

동네 아이들은 놀이터에 모여 선물을 주고 받느라 시끌벅적했어요.

 

영희도 선물을 들고 나와 철이를 찾았어요.

 

"영희야, 여기야!"

 

뒤에서 철이 목소리가 들렸어요.

 

영희가 뒤돌아 보니 철이는 영희에게 선물을 받을 거란 걸

 

미리 알고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어요.

 

"철이야, 선물 받아. 꼭 집에 가서 열어 봐."

 

"고마워. 여기서 열어 보면 안돼?"

 

"안돼, 꼭 집에 가서 봐야 해. 알았지?"

 

"응, 알았어."

 

"나 갈께. 안녕~"

 

"갈려구? 그럼 내일 봐~"

 

철이는 왠지 성급히 뛰어가는 영희에게 손을 흔들었어요.

 

다음 날, 철이는 놀이터에 먼저 나와 영희를 기다렸어요.

 

"철이야, 안녕?"

 

이번에는 철이 뒤에서 영희 목소리가 들렸어요.

 

"영희구나, 안녕?"

 

"선물 보고 실망 안했니?"

 

영희는 철이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어요.

 

"실망이라니? 초코렛 잘 먹었어."

 

"뭐라구? 초코렛이라구? 난 사탕을 선물했는데?"

 

영희는 눈이 동그래졌어요.

 

"나도 처음엔 사탕인 줄 알았어. 영희가 쓴 메모지를 읽고

 

초코렛이 아니면 어때, 사탕이라도 고맙게 생각했어. 그런데

 

사탕 하나를 맛있게 녹여 먹는데, 이상하게 초코렛 맛이 났어.

 

그래서 거울에 혓바닥을 비춰보니 초코렛이 녹아 있었어.

 

영희가 내게 준 선물은 초코렛 사탕이었어. 난 초코렛 선물을

 

받은 거잖아. 그치? 그러니 영희는 미안해 할 것 없어."

 

"그랬었구나!"

 

영희는 철이의 말을 듣고 환하게 웃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어요.

 

"그런데 제과점에선 보통 사탕이었는데 어떻게 초코렛 사탕으로

 

변신한 거지?"

 

영희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말하자,

 

"아마 영희가 초코렛을 못사고 사탕을 고르자, 천사가 나타나

 

사탕 속에 초코렛을 넣어 준 것 같애."

 

"에이~ 그런게 어딨어."

 

"영희는 엄마를 도와주며 사는 착한 아이니까 천사도 알거야.

 

그래서 천사가 영희 몰래 도와 준 거지."

 

"정말 그럴까? 정말 이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너무 좋겠어.

 

나 말고도 어렵게 사는 많은 아이들을 보살펴 줄테니까."

 

철이는 영희를 그네에 태워 뒤에서 힘차게 밀어 주었어요.

 

영희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창공을 향해 멀리 퍼져 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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